조로아스터 – 선과 악의 이원론

조로아스터 혹은 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이다. 대략 기원전 7세기에 페르시아에서 살던 시인이자 예언자이다. 이 종교는 약 2000여 년 동안 이란과 인도에 해당하는 넓은 지역에서 지배적인 종교였다. 그는 77세의 나이에 살해당했습니다.

1. 조로아스터의 생애와 초기 사상

조로아스터(또는 자라투스트라)는 기원전 약 628년경 현재의 이란 지역으로 추정되는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났으며, 지역 사원에서 사제 훈련을 받으며 초기 사상과 종교적 세계관을 형성했습니다. 당시 그는 주변에서 널리 퍼져 있던 다신교 신앙과 제사 중심의 종교관에 회의를 느끼며, 보다 순수한 종교적 진리를 탐구하려는 열망을 가졌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그는 강력한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반대를 받았으나, 그들의 탄압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나아갔습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사람들을 개종하게 하거나 개종자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 영적 계시와 종교적 사명의 시작

조로아스터는 20세에 집을 떠나 깊은 영적 탐구에 나섰고, 10년 후인 30세 무렵에 ‘아후라 마즈다’라는 최고 신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때 그는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우주적 이분법을 깨닫고, 인간의 삶이 선과 악의 전쟁에서 선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조로아스터는 이후 자신의 종교적 사명을 전하며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을 강조하는 삶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3. 박트리아 왕과의 만남

조로아스터는 10년간 그의 신앙을 받아들일 사람들을 찾아 헤맸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병든 말을 치료해 주면서 박트리아 왕 비슈타스파와 가까워지게 되었고, 왕이 조로아스터교를 수용하면서 교세가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조로아스터교가 박트리아 지역을 넘어 페르시아 전역으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고,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이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4. 조로아스터의 가르침과 주요 교리

조로아스터교는 우주의 창조주이자 인간 영혼의 심판자인 아후라 마즈다를 최고 신으로 숭배하며, 선과 악의 이원론을 중심 교리로 삼습니다. 조로아스터는 인간이 내세에서 선악의 판결을 받을 것이며, 이는 각자가 살아가는 동안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조로아스터교의 내세관은 선한 사람은 “행복의 집”이라 불리는 장소로 들어가고, 악한 사람은 “고통의 집”으로 간다는 믿음이 중심을 이루며, 유일신과 최후의 심판이라는 개념은 이후 유대교와 기독교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로아스터
조로아스터 (사진출처 : 나무위키)

5. 동양 종교와의 유사성

조로아스터교는 페르시아 왕국의 주요 종교로 자리 잡으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인간이 도덕적 선택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상을 제시했으며, 이는 힌두교와 불교에서 강조되는 윤리적 실천과도 유사점을 보입니다. 또한,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개념은 동양의 여러 종교에서도 공통된 주제로 다루어집니다.

6. 조로아스터교의 쇠퇴와 현대 상황

7세기 이슬람교의 페르시아 정복 이후 조로아스터교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많은 신자가 인도의 구자라트 지역으로 피신하여 파르시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20세기 들어 조로아스터교 신자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오늘날에는 약 20만 명 미만의 신자가 주로 인도와 이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7. 니체와 조로아스터의 연관성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조로아스터를 고대 종교 창시자이자 새로운 철학적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로 내세워, 기존 도덕과 종교에 대한 혁신적 비판을 시도했습니다. 니체는 조로아스터가 선과 악의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인물이라 보고, 이 인물이 다시 나타나 기존의 도덕적 틀을 해체하고 초인의 개념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 그리고 자아 초월을 추구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신의 죽음”을 선언하며, 인간이 종교와 도덕이라는 전통적 체계를 벗어나 스스로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기존 가치와 도덕을 초월하는 이상적 인간을 의미하는 “초인”을 상징하며, 인간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이후 철학과 문학, 종교 비판에 큰 영향을 미치며, 니체 사상의 핵심을 집약한 저서로 평가됩니다.

8. 조로아스터 최후와 의미

조로아스터는 77세의 나이에 살해당했습니다. 그가 생애를 바쳐 전파해 온 조로아스터교는 당시 종교적, 정치적 경쟁자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전설과 문헌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기록은 조로아스터가 적대 세력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전합니다.

주요 전승에 따르면, 조로아스터는 사원에서 기도 중에 투라니아의 침략자들이 사원을 공격했고, 그 중 한 명인 브란트라가 조로아스터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고 합니다. 이 전설적인 죽음은 조로아스터가 최후까지 그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며 사망했음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에게 큰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