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폴로 (1254~13244)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 났습니다. 마르코 폴로는 유능한 상인인 그의 아버지 니콜로 폴로와 삼촌 마테오 폴로와 함께 상품을 교역하러 베네치아와 중동, 동방을 오갔습니다. 베네치아로 돌아온 후 제노바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이때 만난 동료 죄수 루스 티첼로라는 작가에게 동방에서 겪은 신기한 일을 구술해 《동방견문록》이라는 책을 남겼습니다.
1. 폴로 가문의 무역과 몽골 제국 방문
당시 베네치아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역의 요충지였습니다. 동방 무역은 이슬람 상인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으며, 그로 인해 동방 물품들은 비싸게 거래되었습니다. 1260년경, 마르코의 아버지 니콜로와 삼촌 마테오는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에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내부적으로 정치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고, 니콜로와 마테오는 이로 인해 콘스탄티노플의 상황이 불안정해질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재산을 정리한 후, 두 사람은 불가강을 넘어 동방을 향해 떠나 몽골 제국의 칸인 베르케 칸을 만나게 됩니다. 이 여행 중 폴로 가문은 베르케 칸의 호의적인 환대를 받으며 재산을 두 배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들은 몽골 제국의 수도 상도에 도착하며 여정을 마쳤습니다.
당시 몽골 제국을 다스리던 쿠빌라이 칸은 유럽과의 외교 및 무역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두 형제를 환대하며, 서방 세계와의 교류에 열의를 보였고, 니콜로와 마테오에게 두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지에서 성유를 가져다줄 것, 또 하나는 그리스도교를 전파할 수 있는 100명의 선교사를 대동해줄 것이었습니다.
2. 동방 여행과 마르코의 합류
베네치아로 돌아온 니콜로와 마테오는 장성한 마르코와 재회했습니다. 1271년, 마르코는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중국으로 향하는 긴 여정에 동참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성유를 구할 수 있었지만, 100명의 선교사를 동행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대신 새 교황 그레고리오 10세가 쿠빌라이 칸에게 보내는 친서를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동방으로 가는 여정은 매우 험난했고, 사막을 통과하고 강을 건너며 여러 차례 목숨의 위협을 겪기도 했습니다. 마르코는 여행 중 병에 걸려 약 1년 동안 머물며 회복해야 했으며, 도적 떼를 만나 물건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긴 여정 끝에 1275년, 마르코는 쿠빌라이 칸이 머물던 몽골 제국의 수도 카이핑에 도착했습니다. 쿠빌라이 칸은 먼 길을 찾아온 젊은 서양인에게 호감을 보였습니다.
3. 쿠빌라이 칸의 신임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 칸의 신임을 얻어 황제의 명을 받들고 중국 남부의 운남성, 미얀마, 남동부 지방을 비롯한 다양한 지역을 조사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는 당시 중국어를 몰랐지만 동아시아에서 사용되던 몽골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등을 구사하며 현지인들과 소통했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쿠빌라이는 그를 양저우의 통치자로 임명했다고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 기록의 진위를 의심하며 마르코가 단순히 황제의 특사로 활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마르코는 중국을 제2의 고국으로 여기며 17년간 머물렀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지리적 환경에 대한 지식을 쌓았습니다. 그는 중국의 거대한 도시, 종교적 관습, 기술적 발전, 종이와 화약 같은 신기술을 기록하며 동방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졌습니다.
4. 쿠빌라이 칸과의 이별
쿠빌라이 칸이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마르코 일행은 안전을 위해 귀환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쿠빌라이 역시 이들에 대한 애정을 보이며 그들을 놓아주지 않으려 했지만, 이때 타타르 국왕 아르곤이 쿠빌라이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는 청혼을 보내며 상황이 변했습니다. 쿠빌라이는 이를 수락하고, 코카친 공주를 타타르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마르코와 그의 아버지, 삼촌은 공주의 호위를 맡겠다고 자원하며 귀환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1292년, 마르코와 가족은 쿠빌라이 황제와 이별하고 취안저우를 출발해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쿠빌라이는 마르코의 손을 잡고 다시 돌아오기를 당부했고, 마르코는 이별의 아쉬움을 간직한 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페르시아에 도착한 마르코 일행은 9개월간의 휴식을 취하며 귀국을 준비했습니다.
5. 귀환과 제노바와의 전쟁
1295년, 마르코는 베네치아로 돌아왔고 곧바로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동부 지중해의 무역권을 두고 라이벌인 제노바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며, 마르코는 이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베네치아군은 제노바군에게 패배했고, 마르코는 포로로 잡혀 제노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때 그는 감옥에서 여러 사람에게 동방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했으며, 그 이야기들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6. 《동방견문록》의 출판의 영향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같은 감옥에 있던 영국 작가 루스티첼로의 귀에 들어갔고, 루스티첼로는 그의 이야기를 기록해 《동방견문록》이라는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이 책에는 마르코가 중국과 몽골 제국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 동방의 신비한 문화, 물산, 기술 등이 생생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이 책은 이후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퍼졌고, 유럽인들은 미지의 동방에 대한 경이와 호기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책은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목표와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의 동방 견문록은 이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전과 함께 대중에게 더 널리 알려졌습니다. 유럽인들은 책의 정보를 통해 아시아의 향신료, 비단, 금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에 대한 묘사는 콜럼버스에게 큰 목표가 되었고, 향신료 교역지에 대한 묘사는 서양인들이 아랍 상인들의 독점을 깨고 무역의 주도권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