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장 – 홍건적의 난과 명나라 건국

명태조 주원장(1328~1398년)은 원나라 말, 백련교도에 가담하여 세력을 키운 후 1364년 스스로를 오왕이라 칭했으며 1363년 국호를 대명, 연호를 홍무제로 하여 명나라를 세웠습니다. 명의 황제가 된 후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이룩하였습니다. 그는 1398년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 젊은 시절

주원장(태조)은 중국 황제 중 가장 미천한 출신으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 시절부터 빈곤과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17세 때 돌림병으로 부모와 형제들이 모두 죽자 살 길이 막막해져 인근 절에서 탁발승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가난과 굴욕의 시간을 보내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백련교도의 난에 가담하게 되며 그의 인생이 크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2. 백련교도의 반란과

원나라 말기에는 황허 강의 범람과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며 백성들이 극심한 궁핍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원나라 정부에 대한 반감을 품은 백련교도들이 ‘홍건적’이라는 이름으로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주원장은 홍건적 일파였던 곽자흥의 세력에 가담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곽자흥의 신임을 받으며 부장 자리에 올라 부하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했고, 곽자흥의 양녀와 결혼하여 그의 후계자로 인정받았습니다.

3. 명나라 건국과 중앙집권 체제 확립

곽자흥 사후 세력을 더욱 확대하며 동부 지역의 여러 성을 함락시키고 양쯔강 유역에 진입했습니다. 여러 학자들과 교류하며 통치 원칙, 유교 경전, 군사 체제에 대해 배웠고, 지방 행정 제도와 군사 조직을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1368년에 국호를 ‘대명’이라 정하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 홍무제로 칭했습니다. 그는 명나라를 건국한 후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확립하고자 중서성을 폐지해 승상의 권력을 제한하고, 6부를 황제 직속으로 두어 권력을 통합했습니다. 또한 지방을 13성으로 나누어 각 성에 포정사와 안찰사를 두어 중앙의 권력을 지방까지 강화했습니다.

4. 복고정책과 유교적 도덕 강화

명나라는 ‘중화의 부활’을 목표로 복고정책을 펼치며 전통 유교 가치를 사회에 강조했습니다. 주자의 가르침을 보급하며 효도와 공경, 이웃과의 화목 등을 강조하는 ‘육유’를 선포하여 도덕적인 생활 지침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원나라에서 폐지되었던 과거제를 부활시키고, 당나라를 모델로 한 법률과 행정 제도를 통해 명나라의 사상적·정치적 기틀을 다졌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명나라의 왕조 질서와 통치 원리를 유교적 가치에 바탕을 두고자 했습니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

5. 공신 숙청과 의심의 정치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공신들이 함께했지만, 황제에 오른 후 점점 그들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하들이 모반을 꾀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처형했고, 대표적인 사건이 재상 호유용의 숙청이었습니다. 호유용과 연루되어 무려 1만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후 자신의 친구이자 건국공신이었던 이선장을 처형하는 등 의심과 불신으로 인해 많은 공신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원나라 말기 한족의 차별과 고통에 반발하여 일어난 반란으로, 중국 중원에서 이민족 정권인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한족 왕조 재건의 계기가 된 종교적 민중 봉기입니다. 이 반란은 허페이 성 영평에서 한산동과 유복통이 주도했으며, 백련교의 지원을 받아 세력이 확장되었습니다. 홍건적은 붉은 천을 머리에 두르고 다녀 ‘홍건적’이라 불렸습니다.

1351년 황허강 보수 공사를 위한 대규모 노동력 동원이 민심을 동요시키자, 한산동은 자신을 미륵불로 칭하며 세력을 확대하고 중국 각지에서 원나라에 저항했습니다. 한산동이 전사한 후, 유복통은 그의 아들 한림이를 소명왕으로 옹립하고 송나라를 세웠으며, 원나라 타도를 선언해 전국적으로 반란이 확산되었습니다. 1357년부터 1359년까지 홍건적은 3개 군으로 나뉘어 원정을 나서며 많은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홍건적은 채식주의와 근검절약을 실천하고, 도둑질과 간음을 엄격히 금하는 규율을 통해 민중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목표가 불분명하고 지휘계통이 불안정해 점차 내분이 발생했고, 결속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원나라의 반격을 받았으며, 일부는 고려까지 침입하기도 했습니다. 1360년, 주원장이 소명왕을 살해하고 홍건적 세력에서 이탈하며 난은 종결되었습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역경을 이겨냈던 주원장은 아내 마황후의 사망과 젊은 나이에 요절한 태자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실감과 슬픔 속에서 점점 사람을 더 의심하게 되었고, 공신들을 숙청하며 고독한 노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는 1398년 손자인 윤문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70세로 생을 마감했으나, 그 후 명나라 황위는 그의 넷째 아들 주체가 찬탈해 영락제로 즉위하면서 왕조의 갈등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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