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난 코르테스 – 아즈텍 제국의 식민화

에르난 코르테스 (1485~ 154714)는 에르난 코르테스는 1485년 스페인의 메델린에서 태어났습니다. 스페인 출신으로 디에고 벨라스케스와 함께 쿠바 정복에 나서서 공을 세우고 새로운 원정대의 도독이 되어 유카탄 반도로 가서 아즈텍 제국을 발견하고 정령했습니다. 그는 많은 빚과 문제에 시달리다 154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 에르난 코르테스의 출생

에르난 코르테스는 1485년 스페인의 메델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스페인의 유서 깊은 가문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 마르틴 코르테스 데 몬로이는 작은 영지를 소유한 기사였습니다. 어머니 도냐 카탈리나 피사로 알타미라노는 코르테스를 열심히 돌본 상류층의 여성이었습니다. 이들 가문은 명예와 충성심을 중요시하는 가정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이러한 배경은 후일 코르테스가 명예와 영광을 위해 모험을 떠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 어린 시절과 유학 시기

어린 시절부터 영리하고 호기심이 많았던 코르테스는 부모의 권유로 14세에 살라망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살라망카 대학에서 그는 법학을 공부했으나, 학업보다는 모험에 관심이 많아 결국 대학을 중퇴하게 됩니다. 이후에도 그는 군인이 되는 꿈과 서인도 제도에서 신대륙 탐험을 향한 열망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로 인해 여러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결국 서인도 제도로 떠날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3. 서인도 제도로의 출발과 초기 활동

1504년 코르테스는 19세의 나이로 히스파니올라 섬으로 떠났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관리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시작했고, 쿠바 정복에 동참하여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이후 쿠바에서 다양한 전투와 정복 활동에 참여하면서 군사적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특히 디에고 벨라스케스 총독의 신임을 얻어 쿠바에서 자신의 재산과 권력을 확장할 기회를 얻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원주민 노예와 땅을 소유하게 됩니다.

4. 아즈텍 제국과의 접촉

1518년, 스페인 본국에서 유카탄 반도에 식민지를 세우고자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벨라스케스 총독은 코르테스를 유카탄 원정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이 임명으로 코르테스는 본격적인 정복 활동을 시작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는 그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코르테스는 많은 재정적 후원과 함께 원정을 떠날 수 있었으며, 이후 그는 강력한 리더십과 행정적 경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병사와 선원을 이끌고 원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5. 아즈텍 제국 정복과 몬테수마 2세

코르테스와 그의 원정대는 아즈텍 제국에 도착한 후, 아즈텍의 황제 몬테수마 2세와 접촉하게 됩니다. 당시 아즈텍 제국에는 ‘케찰코아틀’이라는 흰 얼굴의 신이 돌아온다는 신화가 전해지고 있었는데, 코르테스의 외모와 도착 시기가 이 신화와 맞아떨어져 몬테수마는 그를 신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몬테수마는 코르테스 일행을 영접하며 신으로 예우하였고, 이러한 상황 덕분에 코르테스는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는 데 있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즈텍 제국을 신민화한 에르난 코르테스
아즈텍 제국을 신민화한 에르난 코르테스 (사진출처 : 위키백과)

6. 원주민과의 동맹과 아즈텍 수도 점령

코르테스는 타바스코 원주민에게서 받은 여자 노예 말린체를 통해 아즈텍 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파악했습니다. 그녀는 나우아틀어와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어 코르테스에게 중요한 통역가로 활약했습니다. 말린체의 도움으로 그는 아즈텍에 적대적인 부족들과 동맹을 맺고 몬테수마 2세를 인질로 잡아 테노치티틀란으로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1520년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한 코르테스는 황제의 궁전에 들어가 막대한 양의 금을 요구하며 제국을 사실상 장악했습니다. 당시 아즈텍 제국의 주민들은 유럽 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인 천연두에 걸려 거의 괴멸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코르테스는 보다 손쉽게 아즈텍 제국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7. 아즈텍인의 저항

코르테스가 일시적으로 수도를 떠난 사이, 그의 대리인 페드로 데 알바라도가 아즈텍인들의 축제 중 상류층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 분노한 아즈텍인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코르테스와 그의 병사들은 테노치티틀란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병사와 보급품을 잃고, 코르테스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 사건을 에스파냐에서는 ‘슬픔의 밤’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코르테스의 군사 작전에서 중요한 위기였으나, 그럼에도 그는 이후 재정비하여 다시 정복에 나서게 됩니다.

8. 아즈텍 정복의 성공

코르테스는 본국으로부터 추가 병력을 받아 틀락스칼라에서 전쟁을 준비했고, 재정비된 병력으로 다시 아즈텍 제국을 공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아즈텍인들 사이에는 유럽에서 전래된 천연두가 퍼지면서 수많은 원주민이 사망했고, 그로 인해 코르테스는 비교적 적은 저항으로 테노치티틀란을 재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1521년 아즈텍 제국의 수도가 함락되면서 코르테스는 멕시코 지역을 스페인의 영토로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땅을 ‘새로운 스페인(Nueva España)’으로 명명하고, 이후 멕시코시티를 건설하게 됩니다.

9. 코르테스의 최후

코르테스는 은퇴 후에도 여전히 신대륙의 탐험과 정복에 관심을 가졌으며, 쿠에르나바카에 정착하여 태평양 탐험에 힘썼습니다. 하지만 본국 스페인에서 그의 권한이 줄어들며 총독의 지위에서 해임되었고, 1540년에 에스파냐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카를로스 1세에게 정당함을 호소했지만, 많은 법적 문제와 빚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가난한 상태에서 귀국 허락을 받아 멕시코로 돌아가려 했으나, 1547년 세비야 항에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