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토스테네스 – 최초로 지구 크기를 측정한 역사학자

에라토스테네스 (기원전 276~194년)는 기원전 276년에 그리스의 키레네에서 태어났습니다. 기원전 3세기,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크기를 계산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그는 노년에 시력을 잃어 더 이상 학문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에 크게 낙심하여 식사를 거부하였고, 결국 기원전 194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1. 에라토스테네스 출생과 성장 과정

에라토스테네스는 기원전 276년에 그리스의 키레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학문에 열정적이었으며, 철학, 수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공부했습니다. 그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이동해 연구를 계속하였고, 그곳에서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보이며 학계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2. 에라토스테네스 지구 크기의 측정

기원전 3세기, 지구의 크기를 계산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고안해 냅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 과학자들이 세상이 둥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지구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을 떠올렸습니다.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으며, 이는 매우 과학적이고 정교한 접근 방식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이집트의 도시 시에네 근처에 위치한 특별한 우물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매년 하짓날(6월 21일) 정오가 되면 태양이 이 우물 바로 위에 위치하여 햇빛이 바닥까지 똑바로 내리비쳤습니다. 그는 이 현상을 활용해 시에네에서 태양이 머리 위에 위치한다면, 정북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태양이 비스듬히 비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지구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단서를 얻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는 햇빛의 각도 차이를 활용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에서 하짓날 정오에 막대기를 세워 그림자의 각도를 측정했습니다. 그는 이 각도가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를 지구 중심과 연결했을 때 생기는 각도와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 각도는 7.2도였으며, 이를 전체 원의 각도인 360도로 나누어 두 도시 사이의 거리가 지구 둘레의 50분의 1이라는 계산을 해냈습니다. 이로써 두 도시 사이의 거리로 지구의 둘레를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의 실제 거리를 정확히 알아내야 했습니다. 그는 일정한 보폭으로 걷는 훈련을 받은 보행자를 고용하여 두 도시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얻은 측정값을 바탕으로 그는 지구의 둘레가 약 2만 4700마일(약 39,751km)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그의 추정치는 현대적 도구로 측정한 적도 길이2만 4902마일(약 40.76km)와 거의 일치해, 그의 계산이 매우 정확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지구 크기를 측정한 에라토스테네스
지구 크기를 측정한 에라토스테네스 (출처 : 나무위키)

3. 소수 판별 기법 ‘에라토스테네스의 체’

에라토스테네스는 수학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소수를 찾는 방법인 ’에라토스테네스의 체’입니다. 이 방법은 특정 범위 내의 소수를 효과적으로 걸러내는 알고리즘으로,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는 현대에도 널리 사용되며, 소수 연구와 관련된 수학 기초 교육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4. 지리학과 지도학의 공헌

에라토스테네스는 학문적 연구를 통해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의 크기와 경계를 파악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지리학에 기초를 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특히 그는 지구 표면에 있는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여 경도와 위도를 정의한 최초의 학자 중 한 명으로, 이러한 방식은 현대 지도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또한, 에라토스테네스는 당시 알려진 세계의 지도 제작에도 기여하여 “지리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5. 역사와 연대학의 공헌

에라토스테네스는 역사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하려고 본격적으로 시도한 최초의 역사학자입니다. 그는 기원전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연대학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고대 문명들이 남긴 역사적 사건과 신화적 사건의 순서를 체계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특히 트로이 전쟁부터 자신의 시대에 이르는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고대 역사의 대부분은 에라토스테네스가 기록한 날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6. 천문학적 연구의 기초 제공

에라토스테네스는 천문학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별과 행성의 위치를 관찰하고, 지구의 경도와 위도를 연구하여 천문학적 원리에 기초한 측정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지구 크기를 측정하는 그의 방법론에 기초를 제공하였고, 후대 천문학자들이 우주와 별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었습니다.

8. 에라토스테네스의 말년과 영향

에라토스테네스가 활동하던 시대에 알려진 세계는 스페인에서 인도에 이르는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 지역을 넘어서는 세상은 광대한 대양으로 덮여 있다고 믿었으며, 서쪽으로 계속 항해할 경우 결국 인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에라토스테네스의 사고는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고, 특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에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항해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노년에 시력을 잃어 더 이상 학문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에 크게 낙심하여 식사를 거부하였고, 결국 기원전 194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수학적 원리와 지도학 연구, 지구 크기 측정 방법 등의 학문적 업적은 오랜 세월 동안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특히 지리학과 천문학, 수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