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 불교사상의 전파

석가모니 (B.C. 563~B.C. 483년) 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로 인도 카필라바스타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인간의 괴로움의 근원을 깨닫고 구원의 방법으로 팔정도를 제시했습니다. 귀족 계급 중심으로 이어지던 인도 종교와 달리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였고 신을 부정하였으며 누구라도 수행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파해 하층민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1. 탄생과 출가 이유

고타마 싯다르타(석가모니)는 인도 북부의 카필라바스트에서 왕자로 태어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예정이었으나, 인생의 본질적 고통과 인간의 괴로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했습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창시한 불교는 당시 인도 사회의 전통적 신분제도와 달리 누구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특히 계급 제도에 얽매인 하층민들에게 새로운 탈출구가 되었습니다.

2. 시대적 배경

기원전 1500년경, 페르시아 북부의 유목민족인 아리아족은 생활터전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인도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정착해 살고 있던 드라비다족과의 마찰로 전쟁이 발생했고, 무력 충돌에서 승리한 아리아족은 결국 인도의 지배자가 됩니다. 이에 드라비다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리아족의 인도 침입과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문헌으로는 《베다(Veda)》가 있으며, 이 시기를 ‘베다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베다’는 성스러운 지식과 정신적 지혜를 의미합니다. 아리아족은 농경민으로 정착하여 부족 공동체에서 군주제로의 체제를 발전시켰고, 왕위는 세습으로 계승되며 부족회의와 원로회의가 왕권을 견제하는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이들은 또한 독특한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를 확립하였는데, 브라만(사제), 크샤트리아(군인 및 정치 지배자), 바이샤(농공상인), 수드라(노예)의 네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엄격하게 출생에 의해 계급이 정해졌습니다. 특히 수드라는 비아리아족이 대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석가모니가 태어나기 전까지 인도를 지배하던 종교는 브라만교였으며, 자연 숭배라는 원시적 종교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브라만교는 제물을 바치는 종교의식을 중시하였으며, 제사를 통해 신을 숭배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적인 종교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새로운 종교 운동이 발생했는데, 바로 우파니샤드 철학입니다. 이들은 제물 대신 참된 지식을 통해 열반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브라만교는 엄격한 계급제도와 사제계층의 횡포로 인해 하층민들에게 배척당하기 시작했고, 이에 자이나교와 불교와 같은 새로운 종교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석가모니
불교를 전파한 석가모니

3. 고행과 중도(中道)의 선택

석가모니는 원래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극단적인 고행이 아닌 중도(중용)의 수행을 통해 해탈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가 직접 보고 겪은 인생의 괴로움과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왕자의 신분과 가족을 모두 내려놓고 출가를 하였습니다. 그는 마가다국에서 유명한 스승인 알라라칼라마와 우다카 라마루타를 찾아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이라는 고도의 명상 경지를 배웠습니다. 이를 통해서도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고행 역시 해탈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인식하고, 중도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4. 사성제와 팔정도의 가르침

싯다르타는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깊은 좌선에 들어가 49일간의 명상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는 욕망과 애착이 인간의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리고이를 떨쳐내는 것이 진정한 해탈의 길임을 자각합니다. 그렇게 그는 깨달은 자, 곧 부처가 되어 자신을 타타가타(진리에 도달한 자)라 불렀습니다. 이후 45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인간의 고통과 그 해결 방법에 대해 설파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사성제(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 사성제는 첫째,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고체, 둘째, 고통의 원인은 욕망과 애착 때문이라는 집체, 셋째, 이 괴로움을 떨쳐내고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멸체, 넷째, 해탈에 이르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수행 방법으로서 팔정도가 있다는 도체로 구성됩니다.

팔정도는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기억, 바른 좌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마음의 번뇌를 제거하고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특히 계급이나 특정한 신앙의 제약 없이 누구나 수행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만민평등의 사상을 포함하고 있어 당시 카스트 제도에 얽매여 있던 하층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불교는 또 신이나 제물 없이도 수행과 참선을 통해서 해탈할 수 있다는 자립적인 수행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힌두교와는 달리 불교는 개인의 운명을 전생의 업의 결과로 보고, 운명은 신의 개입과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며 신의 역할을 배제하는 무신론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5. 불교의 만민평등 사상과 무신론적 입장

불교는 신이나 제물 없이도 수행과 참선을 통해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자립적인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누구나 깨달음을 통해 해탈할 수 있다는 만민평등 사상을 전하며, 운명은 전생의 업의 결과로 보고 신의 개입 없이도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해 당시 힌두교와는 다른 무신론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6. 불교의 전파와 인도 내 쇠퇴

석가모니 사후 불교는 빠르게 확산되었고, 아소카 왕의 후원을 받아 인도 전역과 동남아시아, 동아시아로 퍼져나가 세계 종교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정작 인도 본국에서는 점차 쇠퇴해 1200년대에는 거의 사라지고 그 자리를 힌두교가 대신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