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테슬라 는 교류 전력 시스템과 무선 전송 기술의 선구자이며, 전기공학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그의 발명은 당대에 큰 경쟁과 도전을 받았지만, 현대 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 출생과 초기 생애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는 1856년, 현재의 크로아티아 스미얀(Smiljan)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전기 공학을 공부하며 뛰어난 두뇌와 창의성을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발명가였고, 아버지는 정교회 사제였습니다. 테슬라의 뛰어난 기억력과 독창적인 사고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2. 미국으로의 이주와 에디슨과의 관계
부모가 사망한 후 테슬라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토머스 에디슨과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에디슨의 DC(직류)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을 맡았지만, 약속된 보수를 받지 못하자 에디슨과 결별하였습니다. 이후 테슬라는 1886년 뉴저지에 ‘테슬라 전기 조명 및 제조 회사’를 설립하며 독립적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3. 교류(AC) 시스템과 전류 전쟁
테슬라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교류(AC) 전력 시스템의 개발입니다. 교류는 전력을 긴 거리까지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에디슨은 AC가 위험하다고 주장하며 대중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이른바 전류 전쟁은 두 사람의 치열한 경쟁을 나타냅니다.
테슬라는 조지 웨스팅하우스와 협력하여 1893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의 전기 공급을 맡으면서 교류의 우수성을 입증하였고, 결국 교류가 전력 시스템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4. 무선 전송과 혁신적 발명
1890년대 후반부터 테슬라는 무선 전력 전송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 1897년, 테슬라는 라디오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였으나, 이탈리아 발명가 굴리엘모 마르코니와 오랜 특허 분쟁을 벌였습니다.
• 1943년, 테슬라가 사망한 후 미국 대법원은 라디오 발명에 대한 공로를 테슬라에게 돌리며 그가 원조임을 인정했습니다.
• 그는 또한 콜로라도 스프링스 연구소에서 대기 전기 연구와 무선 전송 철탑(Wardenclyffe Tower)을 건설하며 전 세계에 전류를 공급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후원자인 J.P. 모건의 지원 중단으로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끝났습니다.
5. 말년의 고독과 미스터리
니콜라 테슬라의 공헌은 현대 기술의 기반을 닦았으며, 그의 이름을 딴 “테슬라 코일”과 “테슬라 자동차(Tesla, Inc.)”는 그를 기리기 위한 상징들입니다. 그의 발명과 비전은 지금도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중요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며,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습성을 가졌습니다.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그는 뉴욕 호텔 방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며 지냈습니다. 그는 살인 광선(Death Ray)을 개발했다고 주장했으나, 그 설계도는 사망 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943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한 테슬라는 사실상 무일푼이었으며, 동시대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사후에 점차 재조명받으며 현대 전기공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습니다.